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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사나이 이순신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명량

by 소말라리 2022.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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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명량이란 

정유재란 당시에 명량 수도에서 벌어진 해전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3대 해전으로 꼽히며, 영화와 역사를 아시다시피 
거의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둔 전투이며 역사가들이 정면에서 맞붙어서 박살을 내기도 했다고 말하지만 대중들이 이를 믿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였다. 실제로 사람들은 명량 해전으로 기억하기 대부분이지만 실제로는 명량이며 명량의 순우리말은 울돌목으로 영화 줄거리 중 이순신 장군의 대사 중에 울돌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바다의 해류를 이용한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 나온다. 해류는 어느 일방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그 흐름을 이용해 방어와 공격에 나선 것이다. 또한 화포를 적당히 활용하여 백병전을 벌이는 등 일본 수군의 배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러한 화포 전법은 사실화된 내용의 아니나 기발한 표현력으로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였다.
명량은 1597년 임진왜란 6년 오랜 전쟁으로 인해서 혼란으로 뒤덮인 조선은 무서운 속도로 한양으로 진격하는 왜군에 의해서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고 누명을 쓰고 파면당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었다.
병사들의 전의를 기대할 수 없으며 불타버린 거북선으로 인해서 오직 12척의 배만 남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명량 전투의 시작 12척과 330척의 왜군은 세계적인 한 획을 그은 단 하나의 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른 휘하 함선들이 겁을 먹고 주저하는 가운데, 이순신은 대장선을 타고 앞장서 나온다. 하지만 왜군의 공격을 버티기가 어려줘지고 배를 이동하지만, 왜군 대장 구루지마는 대장선에 옮겨 가서 백병전을 하라는 명을 내린다.
명량 중에서 명장면 백병전이 시작되고 이때 혼자서 투혼을 부리는 대장선을 보던 안위가 결심을 하고 구하러 달려갑니다.
대장선의 화약도 다 떨어지고 더 이상 상대하기 힘든 모습이지만 이순신 장군의 무사한 모습을 보자 용기가 솟은 조선 수군들은 명량해전에 참가하게 된다. 갑자기 뛰어드는 조선 수군의 용기에 왜군은 당황하여 서로 협조를 못하고 
이에 분노한 구루시마는 직접 이순신의 배로 달려드는데 갑자기 일어난 바다 회오리에 두 대장선은 휘말리게 된다.
이에 대장끼리의 대결 구도가 결성되고, 이순신 장군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일본의 장수 해적왕 구루시마

 

형인 도쿠이 미치유키는 도큐이 가에 입적하여 이를 계승하였다. 아버지 마라카미 미치야스가 죽고 1567년에 가독을 상속받았다. 아버지가 고노씨의 중신이었기에 미치후사도 구루시마 무라카미 중신들의 보좌를 받으며 외할아버지인 고노 미치나오 측에서 일했지만, 막부 측근과의 치교 권한 내지 정치 파벌 등의 문제로, 모리 포위망이 절정에 다르던 겐키 연간인 1570년 고노 가문에 반기를 들었다. 1576년에는 가신 무라카미 요시츠구를 파견 제1차 키즈카와 전투에서 오다 가문의 수군을 무찔렀다. 1582년 재차 고노 가문에서 이반,하시바히데요시의 권유로 오다 가문에 항복했다. 모리 가문의 무네카쓰 등을 시켜 공격하자, 이에 대항하지 못하고 본거지에서 쫒겨나 히데요시에게 몸을 의탁했다.

이때 구루시마 씨로 이름을 고쳤다. 1592년의 임진왜란, 1597년의 정유재란에 참전했지만 1597년에 명량 해전에서 선봉장으로 참전했다가 명량의 물살 변화와 이순신의 지휘로 미치후사가 탄 대장선은 난전에서 격파당해서 전사했다.

명량 해전 때 전사한 마다시라는 인물로 추정된 한 명으로 안골포에서 투항했던 항왜병중 과거 자신의 상관이였던 구루시마의 시체를 알게되었다. 이순신은 부하를 이용해서 시체를 건져냈고,항왜병이 구루시마의 시체를 확인하고 그 시체를 토막내어 걸어서 일본군의 사기를 완전히 꺽어버렸다.

형인 마치유키는 자식을 남기지 못해서 그 후손은 아예 단절되어 버렸고, 미치후사의 집안은 차남인 나가치카가 있었다.

나가치카는 세키가하라전투에서 서군에 일시 가담했지만 아내의 백부가 동군 진영에 합류한 후쿠시마 마사노리였던 덕에 목이 날아가는 대신 기존 이요국의 영지를 몰수당하고 규슈 동쪽 산간 지방 분고국의 모리 번으로 전봉당해 그곳의 번주가 되었다.

이순신의 3대 전투라고 불리는 명량을 한국인으로서 영화로 볼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고 소중한 의미가 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영화화하여 한국인들에게 이순신 장군님의 더욱 많은 스토리를 들려주었으면 한다 앞으로도 더욱 많은 우리나라의 역사영화가 나왔으면 하고 이순신 장군 님의 영화가 좀 더 많은 내용으로 정확하게 영화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여 대한민국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에게 이순신이라는 우리나라를 지켜냈던 위인들이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전해져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고로 나는 이순신 장군님의 열렬한 팬이기는 하다.

앞으로 남은 2편의 영화를 기대하고 기달리며 이순신 장군의 역사에대한 공부를 이어나갈 것이다.

추후에 진행될 영화도 실력이 좋은 배우들로 섭외하여 진행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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